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마즈 토요히사 (문단 편집) == 생애 == 1570년 [[시마즈 이에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84년에 3월에 류조지 가문과 싸운 오키타나와테 전투에 처음으로 출진했고 4월 14일에 히고국(肥後国)에서 관례를 치렀다. 오키타나와테 전투에서 아버지 이에히사로부터 귀환할 것을 명령받았지만 아버지가 고전하는 것을 들으면 달려가야 하고 진중에 있으면서 철수하면 후세까지 수치라고 해 그 곳에 머무르면서 무사 한 명을 무찌른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침략해 오자 큰아버지 [[시마즈 요시히로]] 등과 함께 [[도요토미 히데나가]]가 이끄는 도요토미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했다. 이후 시마즈 가문은 도요토미 가문에게 항복했다. 같은 해에 이에히사가 죽자 휴가 사도와라성의 성주가 되었으며, 히데요시가 일으킨 1590년의 오다와라 정벌, 1592년의 [[임진왜란]] 등에 종군했다. 이에히사가 죽은 후에는 요시히로가 친자식처럼 보살폈다고 한다. [[임진왜란]]에서도 여러 전투에 참가했으며, [[칠천량 해전]], [[남원성 전투]], [[사천성 전투]] 등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노량해전]]에서 병력 대부분을 잃고 목숨만 부지한 채 귀국하게 된다. 1599년에 가신인 [[이쥬인 타다자네]]가 쇼나이의 난을 일으키자 출진해 공을 세워 [[시마즈 타다츠네]]에게 칼을 하사받았다.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백부 [[시마즈 요시히로]]와 함께 서군으로 참전했다가 요시히로가 자신이 제안한 [[야습#s-1]]을 받아들이지 않자 전투에 참여하지 않다가 [[동군#s-2]]이 우세하자 요시히로가 옥쇄하려는 것을 말려 [[시마즈의 퇴각|전법인 스테가마리로 퇴각하기로 한다.]] 이세 방면으로 퇴각하면서 선봉이 되었지만 동군의 추격을 받아 시마즈 가문의 군사가 다수의 피해를 입었고 토요히사는 요시히로의 대역이 되어 [[이이 나오마사]], [[마츠다이라 타다요시]], [[혼다 타다카츠]] 등이 이끄는 도쿠가와 가문의 군사를 상대로 군사를 이끌어 나오마사를 부상 입히고 타다카츠가 타고 있는 말을 저격해서 타다카츠를 낙마시키는 등 분전했지만 온 몸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